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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20일 월요일

현대인의 고독을 그리다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Edward Hopper: From City to Coast》

‘오늘날 우리는 모두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다’

영국 <가디언>지가 쓴 기사 제목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사실주의 화가인 에드워드 호퍼는 도시의 삶과 현대인의 고독을 매력적으로 표현해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호퍼의 그림은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을까. 과연 어떤 매력이 우리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걸까.

<사진=송겸 기자/에드워드 호퍼展>

한국에서의 첫 에드워드 호퍼 개인전은 서울시립미술관과 뉴욕 휘트니미술관이 공동으로 기획해 성사됐다. 서울시립미술관은 해외에서 저명한 미술 기관들과 협력해 세계 명화를 소개하는 ‘해외소장품 걸작전’을 운영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세계 최초 호퍼의 순회전,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Edward Hopper: From City to Coast》를 선보였다.

<삼육대신문>은 에드워드 호퍼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가 바라본 도시와 현대인의 모습을 이해하기 위해 전시회를 찾았다.

<사진=송겸 기자/에드워드 호퍼展>

전시는 ▲에드워드 호퍼 ▲파리 ▲뉴욕 ▲길 위에서 ▲뉴 잉글랜드 ▲케이프 코드 ▲조세핀 호퍼 ▲호퍼의 삶과 업으로 구성된다. 머물렀던 도시를 바탕으로 호퍼의 작품이 발전하는 모습을 전시에 담았다.

첫 번째 전시관 ▲에드워드 호퍼는 호퍼가 사랑하고 그리워한 고향의 모습을 담고 있다. 호퍼는 생계유지를 위해 광고 회사의 삽화가로 일하면서도 순수 미술에 대한 열망을 놓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발전시킨 자신의 화풍을 <자화상>을 통해 표현했다.

다음 전시관은 호퍼가 예술가의 꿈을 안고 더욱 성장하기 위해 선택한 도시 ▲파리다. 그는 자유를 즐기는 파리지앵의 모습에 흠뻑 빠져든다. 햇빛이 비치는 센 강을 자주 거닐던 호퍼는 빛과 그림자에 집중하는 인상주의 화풍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화했다. ▲파리에서는 미술계에서 조롱받는 호퍼 자신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푸른 저녁>을 만나볼 수 있다.

예술계에서 인정받지 못한 호퍼는 고향인 뉴욕으로 돌아와 에칭(etching) 기법을 활용한 판화를 그리기 시작한다. ▲뉴욕은 이 시기의 작품들로 구성된다. 자신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 구도를 작품에 담았다. 뉴욕의 주택가와 고층 건물, 북적이는 번화가의 모습을 동떨어진 곳에서 관람하는듯한 독특한 시선 처리가 인상적이다. 생생하고 거칠게 그려낸 에칭을 통해 호퍼는 평단의 호평을 받고 이름을 널리 알린다.

호퍼의 작품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빛과 그림자의 대조, 마치 연극 무대와 같은 인공적인 배경이다. 그 속에 무심한 도시인들의 모습은 작가의 세계관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뉴욕에 돌아온 호퍼는 산업화로 변화된 도시와 사람들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고 작품 소재로 사용했다.

뉴욕은 호퍼가 가장 사랑했던 도시다. 전시관 ▲뉴욕에선 호퍼의 대표작들을 마주할 수 있다. 호퍼는 다리, 배, 철도, 건물을 집중해서 관찰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했다. 인상주의 화풍으로 도시의 성장통을 그려낸 <퀸스버러 다리>. 삭막한 도시의 빌딩 숲과 그 앞을 흐르는 맑은 강을 대조시켜 보여준 <아파트 건물들, 이스트강>. 다리의 수평 구도를 호퍼만의 방식으로 표현한 <맨해튼 다리> 등이 있다.

호퍼는 창문을 활용해 도시인을 표현한다. 호퍼에게 창문은 타인을 관찰하고 타인에게 관찰당하는 창구다. 호퍼의 작품에서 창문은 외부와 내부를 차단하는 동시에 연결하는 통로로서 기능한다.

<사진=송겸 기자/에드워드 호퍼展 ‘밤의 창문’>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창문과 도시인의 모습은 <황혼의 집>, <밤의 창문>을 통해 볼 수 있다. 특히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은 호퍼가 어떠한 시선으로 도시인을 마주했는지 알 수 있는 대표작이다.

전시의 영제 ‘From City to Coast’는 일상적인 도시 ▲뉴욕(From City)에서 자연으로 향하는 ▲뉴 잉글랜드(To Coast)를 의미한다. 그리고 두 전시관 사이를 ▲길 위에서라는 전시관이 연결하고 있다.

사진=서울시립미술관 제공/에드워드 호퍼展 ‘철길의 석양’>

▲길 위에서는 <철길의 석양> 단 한 작품만을 위한 전시관이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서울시립미술관 이승아 학예사(이하 이 학예사)는 “전시의 주제를 가장 잘 드러내는 작품”이라며 <철길의 석양>을 소개했다. 이어 “대중들이 흔히 생각하는 호퍼의 작품과 대중들이 잘 모르는 호퍼의 풍경화를 연결하는 작품”이라며 이 부스에 <철길의 석양>을 배치한 이유를 설명했다.

다음 전시관은 호퍼가 자주 방문하며 휴가를 보냈던 장소인 ▲뉴 잉글랜드관이다. 호퍼는 인상주의적 화풍으로 뉴 잉글랜드의 자연을 도시와는 다르게 다채롭고 밝게 표현했다.

호퍼가 사랑했던 휴양지의 모습을 ▲케이프코드에서도 엿볼 수 있다. 아름다운 풍경을 다채로운 색감으로 담아냈고, 채도는 높이되 여전히 인상주의적 화풍을 고수했다. 대표작은 단연 <이층에 내리는 햇빛>이다. 사실적인 일상의 장면이지만, 햇빛과 그림자의 대조를 활용해 시간의 흐름에 대한 고찰을 표현했다. 호퍼가 제일 좋아하는 자신의 작품으로 꼽기도 한 명작이다.

<사진=서울시립미술관 제공/에드워드 호퍼展 ‘이층에 내리는 햇빛’>

1층의 첫 번째 전시 공간은 ▲조세핀 호퍼이다. 호퍼의 아내이자 뮤즈였던 조세핀은, 그의 가장 훌륭한 조력자였다. 이곳에선 예술적 영감을 주고받으며 일상을 공유했던 조세핀을 바라본 호퍼의 시선을 엿볼 수 있다. 지금의 호퍼가 존재할 수 있도록 그의 작품 활동을 지지한 그녀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사진=서울시립미술관 제공/에드워드 호퍼展 ‘이젤에 기댄 에드워드 호퍼’>

전시는 ▲호퍼의 삶과 업으로 마무리된다. 호퍼 부부의 여정, 호퍼가 초창기 시절 그린 삽화, 호퍼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기고문, 마지막으로 호퍼 부부의 삶을 녹인 다큐멘터리 <호퍼: 아메리칸 러브스토리>를 통해 예술을 벗어나 일상에서의 호퍼와 인사하며 전시가 끝난다.

에드워드 호퍼는 급격하게 성장하는 도시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독자적인 시각으로 그려낸 현대미술 작가다. ‘길 위에서’라는 전시의 제목은 예술가로서 호퍼가 걸어온 ‘길’을 나타낸다. 이 학예사는 “길은 호퍼가 이동하며 습득한 것들과 그를 통해 본인만의 독자적인 화풍을 이뤄낸 과정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끊임없이 변모하는 세상은 호퍼에게 너무나도 어지러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시선을 천천히 옮기며 길 위에 있는 모든 것들을 애정 어리게 바라봤다.

이러한 호퍼의 가치관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사람들은 서로에게 냉소적이다. 100여 년 전, 뉴욕의 호퍼는 지금의 우리에게 말을 건다. 서로를 조금은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봐달라고, 그 자체가 서로에게 많은 위로가 될 것이라고 말이다. 평범한 일상을 사랑으로 보듬는 호퍼의 시선이 차가운 도시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공감과 위안이 줄 것이다.

<사진=서울시립미술관 제공/《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Edward Hopper: From City to Coast》 공식 포스터>

한편, 전시회는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오는 8월 20일까지 관람할 수 있다.

배건효 기자<ghism02@naver.com>

송겸 기자<salvadorinmyro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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