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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20일 월요일

예(禮)에 깃든 조선을 만나다 … <외규장각 의궤, 그 고귀함의 의미> 특별展

조선의 정신적 근간이자 500년 역사의 문화 자산인 ‘외규장각 의궤’가 올해 귀환 10주년을 맞았다. 1866년 병인양요 당시 수많은 문화유산과 함께 소실된 의궤는 무려 145년 만인 지난 2011년 프랑스국립도서관으로부터 반환됐다.

의궤는 ‘의식의 궤범’이라는 뜻으로 지은 기록물이다. 조선 시대 왕실에서 개최된 중요한 의식과 행사의 전 과정을 담고 있다. 행사의 준비와 진행 과정, 의례 절차와 내용, 소용 경비, 참가 인원, 포상 내역 등 다양한 정보를 상세히 기록해 후대에 모범적인 전례를 남기기 위해 제작했다.

예법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품격의 통치로 백성들을 이끄는 방법이 외규장각 의궤 속에 숨어 있다. 의궤가 품은 고귀한 가치를 인정받아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바 있다.

<사진1=배건효 기자/전시회 포스터>

국립중앙박물관은 외규장각 의궤

국립중앙박물관은 귀환 10주년을 기념해 외규장각 의궤 297권을 모두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외규장각 의궤, 그 고귀함의 의미> 특별전시회를 내년 3월 19일까지 연다.

1<왕의 책, 외규장각 이해>

어람의 품격

중요 행사를 끝마친 후 내용을 정리해 엮은 책. 보편적으로 3부, 많게는 9부를 만든다. 왕에게 올리기 위한 어람용과 사고(史庫)로 보내는 분상용으로 구분한다. 통상 어람용은 1부 제작하는데 열람을 마친 후 외규장각 또는 규장각에 보관한다. 즉, 외규장각의 의궤 대부분이 어람용으로 중요성이 크다.

<사진2=배건효 기자/장렬왕후존숭도감의궤 어람용(왼쪽)과 분상용>

어람용 의궤의 장황(粧䌙)

왕에게 바치기 위해 만들어진 어람용 의궤는 그에 맞는 품위와 위엄을 자아낸다. 초록색의 비단에 구름무늬가 새겨진 표지, 빛나는 놋쇠 장식과 윤기 나는 고급 종이에 최상의 전문가의 솜씨가 더해진다. 과하지 않은 화려함과 은은하게 드러나는 우아함을 통해 ‘어람’의 품격을 감상할 수 있다.

<사진3=배건효 기자/현목수빈장례도감의궤>

하나하나 상세하게

‘조선 기록문화의 꽃’이라 불리는 조선왕조의궤의 가장 큰 특징은 상세함이다. 공문서, 의사결정 내용 등을 통해 당시 신념과 지향점을 알 수 있다. 아울러 글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내용을 아름다운 그림으로 그려낸 ‘도설(圖說)’은 독보적이다. 글을 보고 이해할 수 없는 비례감, 색감, 분위기를 표현한다. 단순히 결과 보고서의 수준을 넘어 당시 국가 행사 모습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2부 <예(禮)로써 구현하는 정치>

<사진4=배건효 기자/국조오례의>

왕조의 정통을 세우다.

당시 왕에게는 정당한 왕위 계승자라는 사회적 인정과 정통성 정립이 필요했다. 의례를 통해 백성들에게 정통성을 드러내고 강화하는 것이 각별했다. 그 순간에 의례에 맞는 예법을 규정한 ‘국조오례의’와 경험을 모아 모범적 기준을 세운 의궤가 활용됐다. 조선 시대에는 됨됨이와 사회적 지위가 명칭에서 드러난다고 믿어 ‘존호’를 올리는 ‘존숭의례’를 통해 왕실의 위상을 높였다. 왕조의 정통성과 통치 철학 또한 의궤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사진5=장대겸 기자/문효세자책례도감의궤>

나라의 근본을 향하다.

조선의 왕세자는 장차 왕위를 계승할 후계자로 ‘나라의 근본’이라는 뜻의 ‘국본’이라 칭한다. 공식적인 왕위 후계자를 만천하에 알리는 왕세자 ‘책례’는 나라를 안정적으로 경영하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의례다. 이때 왕세자는 대례복을 입고 죽책, 교명, 옥인 등 후계자를 상징하는 의물을 전해 받는다. 섬세하게 과정을 그려낸 도설을 통해 당시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3부 <질서 속의 조화>

<사진6=장대겸 기자/궁중음악에 사용된 악기>

기사년 봄날의 왕실 잔치

기사년(1809) 음력 1월 22일, 창경궁에서 경사스러운 의례가 열렸다. 왕위에 오른 20세의 순조가 할머니 혜경궁을 위해 주최한 행사다. 순조는 “관례(성인식) 회갑은 우리 왕실에 일찍이 전례가 없던 예(禮)이다. 봄날의 햇살 같은 따스한 은혜를 갚고자 함은 자식의 지극한 정(情)이요, 만수무강을 기원함은 작은 정성에서 절로 우러나는 것이다”라고 지극한 효심을 내비쳤다. 순조는 가장 웃어른에게 최고 수준의 예우를 갖추며 효(孝)의 가치를 실현했다.

<사진7=장대겸 기자/진찬 행사 3D 영상>

그날의 잔치 속으로

조선이 의례를 통해 실현하려고 했던 이상적 사회를 들여다볼 수 있는 대목. 왕실 구성원과 손님, 연주자 등이 한곳에 모여 의례 절차에 따라 왕실 잔치를 즐기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다. 각자 역할에 맞는 예(禮)를 지키며 다양한 사람들이 조화로움을 이루는 것. 조선이 추구했던 가치이자 나라를 이끄는 지향점이다. 당시 잔치 모습을 디지털 영상으로 즐길 수 있다.

시대마다 이루고자 하는 이상적인 사회상과 실현하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조선은 예법을 통해 질서 있고 조화로운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물이 바로 조선왕조의궤다.

한편, 국립중앙박물관은 지난 10년 동안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과 합작해 외규장각 의궤를 연구했다. 또한 297권의 해제(解題)와 원문, 반차도, 도설 등 모든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외규장각 의궤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으며, 학술총서 6권을 발간했다. 오는 2023년 1월에는 지난 10년간의 연구 성과를 토대로 학술대회와 대중강연을 개최할 예정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측은 고(故) 박병선 박사를 기리며 추모 기간(11/21~11/27) 동안 무료로 전시장을 개방했다. 고(故) 박병선 박사는 외규장각 의궤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고 연구에 헌신하다 2011년 11월 23일 타계한 인물이다.

배건효 기자<ghism02@naver.com>

장대겸 기자<mfoodjdk022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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