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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27일 토요일

고통으로 핀 ‘겨울의 꽃’, 산천어축제의 그늘

지난겨울, 전국 16곳에서 얼음낚시 축제가 열렸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이후 행사를 즐기기 위해 많은 인파가 몰렸다. 3년 만에 개막한 강원 화천군의 ‘얼음나라화천 산천어축제’에는 약 130만 명에 달하는 관광객이 찾았다.

<사진=픽사베이/얼음낚시>

국내 대표적 얼음낚시 행사인 화천 산천어축제는 매년 1월 개막해 3주 동안 진행한다. 이 기간에 쓰이는 산천어는 전국 18개 양식장에서 길러져 운송된다. 올해 화천으로 집결한 산천어는 총 171톤이 넘는다. 전국에서 양식 중인 산천어의 90%가 넘는 물량이다.

최문순 군수는 축제를 앞두고 “최고 품질의 싱싱한 산천어를 축제장에 공급해 관광객들에게 입맛은 물론 손맛까지 선사하겠다”고 말했다. 관광객들은 얼음낚시뿐 아니라 하이라이트 행사인 ‘산천어 맨손잡기’에 참여하며 손맛을 느꼈다. 축제에 참여한 모두가 낚시와 맨손잡기를 즐겼지만, 잡힌 산천어는 얼음판과 사람의 손 위에서 천천히 죽어갔다. ‘겨울의 꽃’이라 불리는 이 축제에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어류의 고통 문제가 감춰져 있다.

얼음낚시에 사용되는 산천어는 낚싯바늘에 의해 온몸에 상해를 입고 죽임을 당한다. 얼음판 위로 내던져진 산천어는 살아보려 애쓰지만 바늘이 더 깊숙이 박힐 뿐이다. 맨손잡기에 동원되는 산천어는 좁은 수조에 갇혀 며칠을 보낸다. 행사가 시작되면 이들은 사람들에게 강제로 들어 올려져 질식사한다.

2021년,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는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어류 복지에 대한 국민인식조사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에 따르면, 동물복지 고려 대상 기준을 묻는 문항에서 ‘동물이 고통을 느낄 수 있다면 해당된다’는 응답이 가장 많이 언급됐다. 복지를 고려해야 할 동물이 무엇인지 묻는 문항에서는 포유류(개, 고양이 포함)가 가장 많은 표를 받았다.

반면, ‘어류가 통증을 감지하는 신경 기관을 갖고 있고 통증을 회피하는 반응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답한 비율은 54.5%에 그쳤다. 응답자의 절반 정도만 어류의 통증을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간 어류의 고통을 입증하는 실험은 꾸준히 있었다. 어류 생리학자 빅토리아 브레이스웨이트와 린 스네이든이 실시한 무지개송어 실험이 대표적이다. 주둥이에 벌독과 식초, 식염수를 주입한 송어들은 스트레스로 아가미의 개폐 횟수가 증가했으며, 식욕을 잃은 채 앞으로 돌진하거나 수조 벽에 주둥이를 문지르는 등 이상행동을 보였다. 이런 현상은 진통제 모르핀을 투여함으로써 감소했는데, 이를 통해 물고기가 통증을 인식함을 입증할 수 있었다.

점차 어류의 고통 인식에 대한 증거가 강력해졌고, 2020년에는 11개 동물·환경 단체로 이뤄진 산천어살리기운동본부가 화천군과 정부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화천군에는 맨손잡기 프로그램 중단, 동물 학대 및 착취 프로그램 전면 개편, 화천천 복원 계획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아울러 정부에는 동물 학대 방지 가이드라인 마련 및 관리, 지역 생태계에 끼치는 축제의 영향 평가 의무화할 것을 촉구했다. 이후 산천어살리기운동본부는 화천군을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했으나, 춘천지검은 현행법상 식용을 목적으로 하는 어류는 동물보호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를 기각했다.

하지만 이미 해외에선 어류의 편안한 죽음 및 복지와 관련한 논의가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영국, 독일, 스위스, 호주 등의 세계 주요 국가들은 척추동물의 경우(어류 포함) 용도와 관계없이 동물보호법을 적용했다. 또한 학대를 금지하는 등 최소한의 보호 기준을 구축했다.

국제 비영리기구인 지속가능한양식관리위원회는 “어류는 지각이 있는 동물이기 때문에 고통을 느낄 수 있다”며 유통 과정에서 편안한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하는 ‘어류 복지 기준’의 초안을 검토 중이다. 세계동물보건기구(OIE)는 2008년부터 양식 어류의 운송, 도살, 기절, 살처분에 대한 금지 권고안을 마련하고 있다.

<사진2=픽위자드/얼음낚시에 동원된 물고기>

어류 복지권을 위해 노력하는 세계의 움직임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올겨울에도 어김없이 100만여 마리의 산천어가 관광객들의 오락과 재미를 위해 고통당해야 했다. 산천어들은 3주간의 축제를 위해 양식돼 왔기에 동물보호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국내에서도 어류를 위한 최소한의 복지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 더불어 동물복지 적용 대상을 확대하려는 사회적 관심도 필요하다. 언어 소통은 불가능할지언정 물고기가 보내는 신호를 고려할 줄 아는 사회가 돼야 할 것이다.

“모든 척추동물(포유류, 조류, 파충류, 양서류, 물고기) 중에서, 우리의 감성에 가장 이질적으로 다가오는 동물이 물고기다. 얼굴 표정을 알 수가 없고 외견상 벙어리인 것처럼 보이므로, 물고기들은 다른 척추동물보다 묵살되기 쉽다.” -<물고기는 알고 있다> 중에서-

전지은 기자<jwings_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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