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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27일 토요일

선열이 걸어온 27년의 길을 기억하다 …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

무릇 우리 한국인은 내외를 논할 것 없이

통일 연합으로 그 길을 정하고,

독립과 자유로 그 목적을 세워야 할 것이다.

이는 신민회가 발원하는 바이며

신민회가 품고 있는 바이다.

요컨대 새로운 정신을 불러 깨우치고

새로운 단체를 조직해서

새로운 국가를 건설할 뿐이다.

-대한신민회 취지서 中-

519년의 장구한 역사를 지닌 조선 왕조의 나라 대한제국은 1910년 8월 29일 찬란한 빛을 뒤로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국가를 잃은 우리 민족은 나라를 되찾기 위해 독립운동을 활발히 전개한다. 이후 1919년 3월 1일, 우리 민족은 일제의 무단통치에 맞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전국적인 만세운동을 펼쳤다. 이 영향으로 같은 해 4월 11일 삼권분립에 기초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다.

<삼육대신문>은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기념일을 맞아 서대문구에 위치한 국립 대한민국 임시정부기념관을 방문했다. 지난 3월 1일 개관한 대한민국 임시정부기념관은 임시정부의 자주독립 국가 수립과 민주 공화제의 정신을 후대에 남기고자 추진했으며, 4년 반 만에 시민들에게 개방됐다. 임시정부기념관은 총 세 개의 상시 전시관과 특별전시관으로 구성돼 1관, 2관, 3관, 특별전시관 순으로 관람하는 것을 권장한다.

2층의 1관은 임시정부가 대한민국을 수립한 후 27년 동안 활동한 과정을 엿볼 수 있다. 다양한 사료와 디지털 아트로 전시된 1관은 임시정부에 대한 관람객의 전반적인 이해를 돕는다.

<사진 출처 = 임민진, 이서연 기자>

1관에 발을 들이면 수많은 볼이 맑은 소리와 함께 내려와 관람객을 맞이한다. 군주의 나라인 ‘대한제국’이 국민의 나라인 ‘대한민국’으로 수립됐음을 키네틱 아트로 나타낸 작품이다. 200여 개의 볼은 3.1운동에 참여한 200여만 명의 민족을 상징한다. 수많은 볼이 음악과 함께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태극기와 ‘백성 민(民)’ 글자를 만든다. 해당 작품을 통해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은 개인이 아닌 수많은 민족(民族)이 지켜왔음을 알 수 있다.

<사진 출처 = 임민진, 이서연 기자/임시지방연통제 관계법령집과 임시거류민단제 상해대한인거류민단 조례 및 규칙>

대한민국 독립을 위한 임시정부의 활동은 여러 분야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임시정부는 일본의 영향력이 비교적 적은 국외에 위치했기에 국내와 소통하는 데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때문에 국내 주요 지역과 통신 연락을 담당하는 관청 기구인 교통국을 설치했으며, 운영을 위해 지방행정제도인 연통제를 시행했다. 임시정부는 국내외 기관을 통해 동포들에게 정보를 전달하고 수집했다. 더불어 교민단체를 통해 해외동포들의 조직인 교민단을 관리하기도 했다. 독립운동을 위해 행정 제도를 구축해 국내외 조직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자 한 임시정부의 노력이 돋보인다.

<사진 출처 = 임민진, 이서연 기자>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외교활동을 통해 독립 문제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 파리강화회의와 국제사회당회의 등 국제회의에 대표를 파견해 대한민국의 독립을 피력했다. 임시정부는 파리위원부를 설치하고 각국 대표들에게 독립을 위한 청원서를 보냈다. 나아가 중국 호법 정부와 러시아에게 대한민국 임시정부 승인과 독립운동자금 지원을 약속받아 임시정부의 존재를 입증했다.

또한 대미 외교를 위해 워싱턴에 구미위원부를 조직함으로써 미국 정부와 교섭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를 발판으로 1943년 카이로에서 제2차 세계대전 후 한국의 독립을 보장한다는 내용이 담긴 ‘카이로 선언’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임시정부는 활발한 외교로 대한민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이바지하며, 독립의지를 세계에 알리고자 부단한 노력을 해왔다.

<사진 출처 = 임민진, 이서연 기자>

3층의 2관은 임시의정원의 활동을 포함해 임시정부를 도왔던 국내외 동포와 가족들의 이야기로 구성됐다. 임시의정원 의원들 사진으로 이뤄진 대형 스크린의 화면을 터치하면 임시의정원의 체계가 자세히 나타난다. 임시의정원 의원 자격과 역대 의원뿐 아니라 39회의 회의 안건이 기록돼 있어 우리에게 생소한 과거의 입법부를 세세하게 엿볼 수 있다.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은 현재의 입법부 역할로서 국민을 대표하는 ‘의원’들과 의원의 대표인 ‘의장’ ‘부의장’으로 구성됐다. 의원들은 법률을 제정하고 예산과 결산을 심의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산하에는 ‘비서국’을 두어 의원들의 활동을 지원하며 사무를 담당하도록 했으며, 전원위원회, 상임위원회, 특별위원회 등의 위원회도 설치해 활동했다. 그 밑으로는 법제, 내무, 재무, 군무, 교통 등의 일을 담당하는 8과를 뒀다. 임시의정원은 구체적인 역할 배분과 체계 결성으로 입법 기구의 뼈대를 갖춰 갔으며, 현재까지 영향을 미쳤음을 발견할 수 있다.

<사진 출처 = 임민진, 이서연 기자>

초기 임시정부는 중국 상하이를 거점에 두고 13년간 활동했으나, 1932년 4월 윤봉길 의사의 의거 직후 중국 항저우로 떠났다. 1935년에는 일본의 눈을 피해 전장으로 이동한 뒤 난징에서 2년간 생활했다. 이후에도 창사, 광저우, 포산, 싼수이, 류저우, 치장, 충칭 순으로 수차례 이동하며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미디어 아티스트인 한계륜 작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걸어온 길-돌아오기 위해 떠난 4000km’를 제작해 임시정부의 사람들이 걸어온 길을 표현했다. 작품 한쪽에 위치한 거울은 영상을 반사해 그들이 걸어온 길을 관람객들이 간접적으로 체험하도록 했다. 출구로 걸어가는 동안 거울에 반사된 역동적인 효과와 태극기 영상을 통해 험난했던 그들의 긴 여정을 몸소 느낄 수 있다.

<사진 출처 = 임민진, 이서연 기자>

상시 전시 마지막 4층의 3관은 대한민국이 광복함으로써 임시정부에서 정부로 변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하자 대한민국은 독립을 맞이했다. 동시에 임시정부는 고국으로 돌아와 새 나라를 세우고자 노력했다. 이에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돼 현재의 나라가 구축됐다.

<사진 출처 = 임민진, 이서연 기자>

현재 정부 수립 과정과 더불어 전시관 중앙에는 LP판이 놓여 있다. 이를 통해 독립운동가 조소앙 선생의 1946년 3.1절 기념식 육성 연설을 들을 수 있다. 대한민국의 완전한 독립 염원을 담은 선생의 힘찬 목소리는 마치 관람객들이 과거 속 기념식에 서 있는 것 같은 생생한 현장감을 구현한다.

1층에 위치한 마지막 특별전시관에서는 ‘환국-대한민국 임시정부 돌아오다’를 전시하고 있다. 올 6월 26일까지 진행하는 특별전은 임시정부의 수립부터 현대의 정통성 계승까지 선보이고 있다. 상시 전시관에서 볼 수 없는 사료가 추가로 전시돼 있으니, 특별 전시관을 함께 방문해 보길 바란다.

임시정부 수립은 우리나라가 군주의 나라에서 국민의 나라가 된 중요한 시점이다. 비록 임시정부였으나 대한민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결성된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 정부임은 틀림없다. 더 나아가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의 형태를 갖추며 삼권분립으로써 권력의 견제와 균형을 맞추고자 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체계적인 독립운동을 펼쳐 나가며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를 적극적으로 표출한 자랑스러운 독립운동가들. 척박한 환경 속에서 대한민국이 탄생한 역사적인 순간을 국립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을 통해 느껴보는 건 어떨지 추천한다.

임민진 기자 <septmimij@naver.com>

이서연 기자 <seoyeon574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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